京都の逸品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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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식 부채와 둥근 부채

못칸(나무종이)를 기원으로 하는 부채는 원래 글씨를 적기 위한 물건으로 개발되었습니다. 헤이안(平安)시대에 궁정에서 쓰였고 세월이 흘러 향도, 다도 및 무용 등과 같은 예술이 발달하면서 불교 승려 사회와 오락 분야에서 부채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각각의 특정 용도를 위한 별도의 부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도(江戶)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일반 서민에게까지 부채 사용이 보급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부채는 일본의 문화 수도라는 위상 때문에 교토(京都)에서만 필요하였고 이것이 교토식 부채가 발달한 배경 원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교토식 부채는 중국으로 수출되었고 그 후 16세기에는 유럽에도 수출되었으며 현재는 여러 가지 다양한 부채가 제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의 보존과 부채의 사용에 내재된 우아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하나의 부채가 완성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20가지 이상의 공정 과정이 있습니다. 이 분업 체제에는 부채살 제조자, 화가, 접는 장인 및 부채 마무리사 등과 같은 장인이 있습니다. 각 제작 공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조 과정 가운데 특히 "쓰께"라고 불리는 마무리 과정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이 과정은 다년간에 걸친 숙련된 기술적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부채는 나무로 만든 판선, 종이 부채 및 비단 부채 등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제조 기술과 재료는 각 부채 종류마다 다릅니다. 실용적인 용도를 위한 부채로는 축하용 부채, 노오 부채, 일본 전통무 부채, 여름 부채 및 다도용 부채가 있습니다. 철선, 향부채, 히노키 부채와 같은 특수 부채도 있을 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온 유소쿠 부채(신사 및 사찰의 부채)도 있습니다.

현재 교토(京都)에는 부채 가게로 알려진 곳이 약 40여 곳이 있습니다. 일부 가게는 부채 제조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반면, 다른 가게는 여름 부채와 같은 한 가지 특정 종류의 부채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등 부채 판매도 세세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일부 가게가 특정 부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하고, 특정 부채의 다양한 스타일과 형태를 공급하기 위해서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宮崎) 유젠사이, 다와라야(俵屋) 소타쓰(宗達) 및 오가타(尾形) 고린(光琳)와 같은 화가가 에도(江戶) 시대의 시정 화가로서 다양한 디자인을 창작하였습니다.

교토식 부채는 일본의 문화 수도인 교토와 함께 밝고 정교한 디자인을 갖춘 것이 특징이며 일본에서는 90%의 부채 생산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교토식 원형 부채는 부채용 종이 안에 많은 대나무 뼈가 삽입되어 있는 한국 원형 부채의 계통을 이어받아 부채면과 손잡이가 따로 만들어지는 부채의 "부채살 삽입"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미야코식 부채"라고도 불리는 교토식 원형 부채는 궁정에서도 사용되었으며 매우 우아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부채는 널리 보급되었으며 단지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아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교토식 칼

헤이안(平安)시대부터 교토(京都)는 일본의 수도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메이지(明治) 시대의 초기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칼 생산지였습니다. 수도의 번영을 말해 주는 공예, 조경, 건축 및 꽃꽂이와 같은 다양한 문화 산업이 번창한 교토(京都)에서 교토식 칼은 교토 각 지역의 지도자를 위한 도구로 개발되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토(京都)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교토식 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토(京都) 문화 지원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헤이안(平安) 천도(794년)에 의해 우수한 대장간촌이 나라(奈良)에서 교토(京都)로 옮겨짐으로써 교토식 칼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토(京都)가 수도가 되어 정치와 경제 뿐 아니라 물류의 선도 역할을 하였으며 칼 제조에 있어서도 뛰어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금속 재료로서 사용하기 위해 이즈모(出雲) 지역에서 구해오는 사철과 철강 원료,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기 위한 후시미(伏見) 일대의 흙, 단바(丹波) 지역의 송탄과 양질의 물, 칼을 갈 때에 필요한 나루타키(鳴瀧)의 천연 숫돌 등은 모두 이 지역에서 용이하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까지 교토는 대표적인 칼 생산지였습니다.

교토식 칼은 교토(京都)의 전통 산업인 니시진 직물, 부채, 대나무 공예, 목공예, 조경, 건축, 요리, 다다미, 기와 및 꽃꽂이 등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쓰는 도구로 발전하여 오늘날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토식 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토(京都) 문화 지원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습니다.

교토식 칼의 한 가지 특징은 오늘날에도 분업 체제를 취하지 않고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사람의 대장간 일꾼이 일인 공정 방식으로 모든 작업 과정을 완료하는 장인생산방식을 취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교토식 칼이 주방칼, 가위, 톱, 손도끼, 낫, 죽순 캐는 도구 및 조각도와 같은 다양한 일상 용품에서부터 전문가의 도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품으로 제작되고 있지만 대장간의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 추세입니다.

교토식 도장

문자를 새겨 넣은 도장을 사용하는 것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인장 문화가 있는 국가에서는 실제 비즈니스 거래에서 도장에 새겨진 이름은 도장을 가진 사람의 이름이거나 대리인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도장의 사용 용도에 따라 도장에 새기는 서체도 다르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껍고 굵은 라인이 있는 서체는 중요한 목적을 위해 찍는 도장에 사용됩니다.

교토식 도장은 글자체가 딱딱하고 질서 정연한 인상을 주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서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 개발된 도장은 쇼토쿠태자 시대에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관인과 같은 많은 종류의 도장이 헤이안(平安) 수도가 위치한 교토(京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인증 및 허가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권위의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는 도장을 생산하기 위해서 적합한 기술과 예술적 스타일이 끊임없이 요구되었습니다. 에도(江戶) 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도장 사용이 보급되고 수요가 급증하였습니다. 일본 최초의 도장 인장자가 살았던 도시인 교토(京都)는 인장의 생산 중심지로 발전하였습니다.

교토(京都)의 도장은 중국의 인장 황금 시대인 소위 한 왕조 인장이라 불리는 청동 인장 스타일을 지닌 것이 특징입니다. 대개 이러한 도장은 소위 한 인텐 인장 문양이라 불리는 두껍고 굵은 라인을 가진 매우 정교한 스타일을 나타냅니다. 전통적인 교토식 도장은 황 요(楊), 물소 및 상아를 소재로 사용하여 제작됩니다. 교토식 도장의 생산은 그 도장의 소유주와 사용 용도와 밀접하게 근거하고 있습니다. 도장은 글자에 독특한 스타일을 담기 위해 전통적인 조각 기술을 이용하여 만듭니다. 각 교토식 도장은 대대로 이어져 온 전통이나 지혜, 장인들의 고도의 기술을 나타내고 이러한 예술적 스타일은 미래 세대를 통하여 계속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교토식 바늘

교토(京都)에는 "키다오레" 또는 "옷치장으로 재산을 탕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토(京都) 사람이라면 중요한 날을 위해 니시진 직물이나 유젠 염색을 사용하여 만든 고급 기모노를 입는 데에 전재산을 탕진할 것이라는 뜻으로 교토(京都) 사람의 과시욕을 나타내기 위해 풍자적으로 사용됩니다. 동시에 교토 사람은 손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임을 내포하는 좋은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토(京都) 문화에서 교토식 바늘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토(京都)의 명물로서 일본 전통 노래와 시에도 등장하는 교토식 바늘은 작고 질 높은 교토 토산품으로 인기가 매우 높았으며 교토로 여행 오는 여행자들에 의해 그 품질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나무 가림막 바늘은 대표적인 교토 토산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651년 궁중의 어용침사가 임명되었으며 1655년에는 후(後)사이인(西院) 천황으로부터 대나무 가림막의 옥호를 받았습니다. 교토 고쇼 내에서의 바늘 생산은 바늘을 깨끗이 하고 바늘 제작 기법도 공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수(御簾)(대나무 가림막) 뒤편의 공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행위로부터 "대나무 가림막"이라는 옥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늘은 일본식 재봉 바늘, 서양식 재봉 바늘 및 특수 바늘로 분류됩니다. 대나무 가림막 바늘 등 일본식 재봉 바늘은 바늘구멍이 둥글고 바늘 끝이 점점 날카로워져 천을 쉽게 통과하고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나무 가림막 바늘의 가장 큰 특징은 재봉 시에 전혀 힘이 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섬유가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바늘 끝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도의 작은 바늘처가 있습니다. 바늘의 표면에는 연마 공법으로 만들어진 극히 미세한 세로선이 있어 바늘이 섬유를 통과할 때 마찰을 줄이고 바느질이 잘 되도록 해줍니다. 바늘 끝에는 안쪽이 매끄럽게 연마된 원형의 구멍이 있어 실이 걸리거나 끊어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바늘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독특한 열처리 가공법이 사용되어 바늘 끝부분은 강하고 바늘구멍 주변은 부드럽고 구리 부분은 탄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나무 가림막 바늘에는 탄력성이 있습니다.

교토 요리

교토 요리는 1000년의 수도였던 교토(京都)에서 발전한 일본의 황궁 요리입니다.

교토 요리는 유소쿠 요리(귀족 요리)에서 볼 수 있는 전통 문화 강조, 혼젠 요리(고급 전통 일식)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전문성 및 쇼진 요리(채식가 요리)에서 사용되는 요리법 등 몇 가지 요리의 우수성을 취하였고, 다도에서의 오모테나시(환대) 정신을 응용하여 이러한 우수성을 간략화하고 재구성한 요리입니다. 현대의 교토 요리는 교토(京都)의 전통 일식 요리사가 개발한 가이세키 요리(다도 요리)를 기본으로 한 오모테나시(환대) 요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교토 요리는 원래 교토(京都) 지방의 요리라기보다는 일본 요리의 기원이 되는 황궁 요리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교토(京都)가 794년에 일본의 수도로 정해졌습니다. 야마시로(山城) 지역의 일부가 수도가 되었고 현재는 그 장소가 교토시(京都市)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나가오카쿄(長岡京), 오쓰(大津) 교토, 평성교토 및 후지와라(藤原) 등 많은 옛 수도가 있었고 일본의 수도였던 시기에 각 지역에서 개발된 것이 교토 요리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토(京都) 지역에 1000년 이상 수도가 있었기 때문에 교토(京都)의 요리를 일반적으로 교토 요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원래 교토 요리는 수도가 어디에 있던지 궁중 오모테나시(환대) 요리를 교토 요리라 불렀습니다.

헤이안(平安)시대에는 조정의 관례에 따라 유소쿠 요리가 발달하였으며 이 시대에는 조정 출신의 요리사가 만드는 요리가 교토 요리였습니다. 가마쿠라(鎌倉) 시대 이후부터 혼젠 요리(고급 전통 일식)를 사용한 쿄오우(향응 대접)라고 부르는 오모테나시(환대) 연회가 무가의 오모테나시(환대) 요리로서 유행하였고, 무로마치(室町) 시대에는 이 요리 개발이 완성되어 교토 요리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가장 고급스런 일본 요리가 되었습니다. 에도(江戶) 시대가 시작되고 일본이 태평성대를 맞이하면서, 쇼진 요리(채식가 요리)와 다도를 위한 가이세키 요리(일본식 잔치 요리)가 발달하였습니다. 그 후 리큐 다도에서 개발된 가이세키 요리(다도 요리)와 분카 분세이 시대인 에도(江戶) 중기에 개발되었다는 음식점의 가이세키 요리(일본식 잔치 요리)의 차이점을 구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오늘날 음식점 요리는 가이세키 요리(일본식 잔치 요리)라고 부르는 반면, 다도 요리를 가이세키 요리(다도 요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교토 요리는 더 이상 본래 궁중에서 접대하던 오모테나시(환대) 요리가 아닙니다. 유소쿠 요리, 혼젠 요리(고급 전통 일식), 쇼진 요리(채식가 요리), 가이세키 요리(다도 요리)와 가이세키 요리(일본식 잔치 요리)가 혼연일체가 된 것입니다. 이 교토(京都) 요리는 교토 요리사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본인들의 아이디어를 추가하여 개발한 오모테나시(환대) 전통의 일식 요리입니다. 이름의 기원에 따라 현재의 수도인 도쿄(東京)의 황실에 내놓는 요리는 교토 요리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明治) 시대에 서양식 식문화를 중시했던 정부 정책에 의해 현재 황실에 내놓는 요리는 서양 요리입니다. 그 결과, 일본에서 가장 장기간 수도였던 교토시(京都市)에 본래의 일본 식(食)문화가 남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전통 일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만이 교토 요리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교토식 절인 음식

겨울의 강추위로 유명한 교토의 습도 높은 기후 속에서 비옥한 토양과 양질의 물로 재배한 교토 야채는 역사와 전통 속에 육성된 교토(京都) 식(食)문화의 근원입니다. 맛 좋고 색과 형태가 다양한 이 독특한 야채를 먹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발달하였습니다. 교토식 절인 음식은 신선한 야채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킴으로써, 독특한 우마미(감칠맛)와 풍미를 자아냅니다. 과거에는 단지 보존 식품이라고 생각했었던 쯔케모노(야채 절임)가 전통적인 방법과 창의력을 통해 세련된 조리법으로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 장에서는 교토식 전통 절임 음식인 "센마이즈께"(절인 무), "스구키"와 "시바즈께"를 소개하겠습니다.

"센마이즈께"(절인 무)는 교토(京都)의 겨울을 대표하는 전통 야채인 쇼고잉 순무를 굵게 썬 다음, 큰 대패로 얇게 썰어 만듭니다. 썬 무 조각들을 통 밑에 담고 소금에 절입니다. 이러한 수작업을 여러 번 정성스럽게 반복한 다음, 2-3일 간 선절임 과정을 계속합니다. 남는 물기를 뺀 후, 주요 절임 과정으로써 순무에 다시마와 양념(설탕, 식초 등)을 차례로 뿌립니다. 2-3일 후, 무 조각을 통 밖으로 꺼내면 부드러운 감촉과 미묘한 맛이 나는 절인 무 제조 과정이 끝납니다. 절인 무를 씻지 말고 은행잎 모양으로 잘라 먹으면 좋습니다. 살짝 절인 미부나(교토 야채)와 함께, 절인 무를 이쿠라(연어알), 훈제 연어 및 구운 햄과 함께 먹으면 맛있습니다. 이 절인 무는 에도(江戶) 시대 말기에 궁중의 요리사가 천황의 기호에 맞추어 개발한 음식으로, 순무 하나에서 "1000개의 조각을 썰 수 있는" 정도까지 얇게 썬 희고 아름다운 순무로 쯔케모노(야채 절임)를 만든 것이 기원입니다. 한 통에 절이는 절인 무의 개수가 1000개를 초과한다는 사실에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오세이보(연말에 하는 선물)와 같은 선물과 기념품으로 아주 인기가 많습니다.

"스구키"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수확한 가미가모(上賀茂) 특산물인 스구키 순무의 껍질을 벗기고 선절임 과정으로 하루 밤낮으로 소금에 절여 담급니다. 야채의 섬유가 부드러워진 순무를 씻은 후, 통안에 넣고 소용돌이 모양으로 각 층에 적당한 양의 소금을 뿌려 절인 다음, 순무를 담은 통 위에 무거운 돌을 얹기 위해 지렛대의 원리를 응용한 "텐빈-오시"(막대기형 누름돌)라고 부르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주 절임 과정은 완성되기까지 일주일에서 10일 정도 걸립니다. 또한, 여기에 무로라고 불리는 섭씨 약 40도 되는 온실에서 약 1주일 동안 유산 발효 시킵니다. 이러한 절임은 숙성된 신 맛이 특징입니다. 먹을 때는 물로 씻어 호박(琥珀) 순무 부분은 기호에 따라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잎은 잘게 썰어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따뜻한 밥 뿐만 아니라 술 한 잔에 치즈처럼 곁들여 드셔도 좋습니다. 이 절인 무는 모모야마(桃山) 시대에 가미가모(上賀茂) 신사(神社)를 섬기는 신토 사제의 가족 사가의 구역에서 재배된 것이 시초로, 진귀한 고급품으로서 상류 계급의 선물용으로 사용되었고 사원에서 오랫동안 문외불출의 물품이었습니다.

시바즈께는 양질의 물, 분지 환경 및 지역적 기후 조건(낮과 밤의 극도의 온도차로 안개가 생김) 덕분에 좋은 색상, 향과 맛을 가진 오하라의 시소(차조기)를 사용하여 만듭니다. 여름 철에 자른 가지를 소금과 차조기로 절이고 자연발효 시킵니다. 이 절임은 유산 발효한 신 맛이 독특합니다. 씻지 않고 잘라서 그대로 먹습니다. 볶음밥에 넣거나 스시밥과 혼합하여도 좋습니다.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에,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로 유명한 겐레이 몬인이 잣코인(寂光院) 사원에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간단한 보존 식품으로서 쯔케모노(야채 절임)를 만들던 마을 사람들이 여름 야채 절임을 진상하자, 그녀는 야채 절임의 선명한 깊은 홍색과 화려한 향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이름도 오하라메(물건을 파는 오하라 출신 여자)가 머리에 장작을 이고 행상하곤 했던 시바(장작)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지차(宇治茶)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아키에(明惠)가 우지(宇治)에 다종을 심은 것이 우지차(宇治茶)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무로마치(室町) 시대에는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 義滿)의 장려로 다원이 만들어졌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시대에도 다도와의 관계 때문에 우지차(宇治茶)가 보호되었습니다. 대량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질이 좋은 우지차는 교토(京都)의 역사와 전통 속에 육성된 최고급의 브랜드 녹차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우지는 고급 차를 생산하는 차산지로서 역사가 깊고 뛰어난 제다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우지차(宇治茶)는 거의 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우지차의 기원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교토(京都) 도가노 고산지(高山寺)의 아키에(明惠)라는 지덕을 갖춘 승려가 차를 우지(宇治) 땅에 들여온 것이 시초입니다. 당시에는 도가노에서 만든 차를 "혼차(우지차)"(주산지에서 생산된 차)라고 부른 반면, 우지(宇治)를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만든 차를 "비차"(주산지가 아닌 곳에서 생산된 차)라고 불렀습니다.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우지차가 아시카가(足利) 장군가나 각 영주가의 비호를 받아 급속히 발전하였고 결국 우지에서 생산된 차가 혼자(주산지에서 생산된 차)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우지차는 조정, 도쿠가와(德川) 막부(幕府) 및 다도 이에모토(스승)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독특한 발전 과정을 겪었습니다.

에도(江戶) 시대에는 나가타니(永谷) 소엔(宗円)이 우지 차 제조방법을 만들었고, 이것이 일본 전국에 퍼져 현재의 엽차(어린 잎으로 만든 차)로 발전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다원은 현재의 우지시(宇治市)에서 교토부 남부지부를 중심으로 시가(滋賀), 미에(三重), 나라(奈良)와 현경계를 맞대는 지역에까지 이릅니다.

표시 기준을 보다 엄격화하는 추세에 영향을 받아, 교토부(京都府) 차 상업회의소는 우지차(宇治茶)를 위에서 말한 4현에서 재배된 차로 정의하고 교토부(京都府)내에서 행하던 차생산 과정은 종결하였습니다. 우지에서 생산되는 다종은 예로부터 텐차(찌고 말린 차의 잎)가 주이며, 옥로(고급 녹차), 엽차 및 반차(엽차 가공 과정에서 남은 잎 중 약간 단단한 잎을 골라 만든 차)와 같은 주요 일본차도 모두 포함됩니다. 차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품질의 우수성과 역사적 기원은 우지 지역을 일본차의 최고봉이라고 부르기에 걸맞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텐차(찌고 말린 차의 잎)와 옥로(고급 녹차)는 한 잎 한 잎 손으로 따서 수확하고 있습니다.

교토(京都)에서는 현재도 손님에게 맏차(抹茶)를 내놓는 관습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토(京都) 사람에게 차는 특히 친밀한 마실거리이고 오모테나시(환대)의 사고 방식이 특별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은 주인과 손님이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즐기기 위한 욕구의 표현입니다.

【참조:
야후 백과 사전: http://100.yahoo.co.jp/detail/%E5%AE%87%E6%B2%BB%E8%8C%B6/
「교토(京都) 백과 사전」랜덤 하우스. 고단샤(講談社), 2007년 발행
교토부(京都府) 차 협동조합: http://www.kyocha.or.jp/

사케

사케는 쌀과 물을 주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만든 양조주입니다.

찐 쌀을 누룩이라고 부르는 미생물을 사용하여 당화공정하면서 효모로 알코올 발효시킵니다. 일반적으로 발효가 끝나면 짜서 청주(정제된 사케)와 사케 카수(술지게미)로 분리합니다. 쌀의 정제도, 효모의 종류, 열살균 방법 및 첨가 성분의 유무와 비율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품질과 풍미가 만들어집니다.

사케는 실온으로 마시거나 차게 해서 마셔도 좋습니다. 또한, 드물게 술을 따뜻하게 해서 마실 수도 있는 주류 중 하나입니다. 청주는 포도주나 맥주와 같은 식으로 만든 양조주입니다. 와인 제조에서는 포도의 당을 효모가 섭취하고 알코올 발효합니다. 청주의 경우는 쌀의 전분을 누룩이라고 부르는 미생물을 사용하여 당질로 바꾸고 그 당을 효모가 알코올로 변화시킵니다. 이 누룩과 효모, 2개의 미생물에 의해 발생하는 서로 다른 변화가 하나의 용기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정제된 사케 양조의 특징입니다. 일본에는 1,500개가 넘는 양조장이 있어 각 지역의 개별 기후, 수질, 음식물에 대한 기호의 차이 때문에 다양한 풍미를 지닌 청주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교토(京都)에 있는 약 50개 정도의 양조장만 비교해 보아도 각 양조장마다 독특한 청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양조 과정에 따른 풍미의 차이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대표적인 사케 제조 과정을 소개하겠습니다.

긴조슈(고급 사케): 원래 무게에서 60% 이하로 정제한 쌀과 화려한 향기를 내는 효모를 사용하여 만든 사케입니다. 그 때문에 과실이나 꽃과 같은 향기를 내고 투명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냅니다. 원래 무게의 50% 이하로 정제된 쌀을 사용하는 사케는 다이긴죠(최상급 사케)라고 합니다.

쥰마이슈(순미주): 첨가 성분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쌀과 물로만 만든 사케입니다. 이 사케는 온화한 향기와 풍부한 맛을 냅니다.

나마 자케(저온 살균을 하지 않은 술): 이 사케에는 저온살균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케는 신선한 풍미가 매력이지만 쉽게 변질되므로 관리상 주의가 필요합니다.

원술(정제하지 않은 사케): 압축 후에 알코올 농도를 조절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청주가 13-16%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는 반면, 이 사케는 17-20%로 농도가 높습니다. 이 사케는 강하고 풍부한 맛을 냅니다.

고슈(오래된 술): 3년 이상, 때로는 20년 이상 숙성시킨 사케입니다. 나무향 또는 매운 향 및 깊고 그윽한 부드러운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타루자케(통 사케): 일반적으로 삼목통에 저장한 사케로 나무향이 나는 사케입니다. 결혼식과 신년 축하 모임과 같은 축하 이벤트에서 행하는 "카가미 비라키"(통 깨기)라고 부르는 의식에서 종종 사용됩니다.

니고리슈(탁주): 이 사케는 짤 때 눈이 성긴 천으로 거르기 때문에 희고 탁한 상태의 사케입니다. 이 사케에서는 단맛과 신맛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제조 방법을 조합시켜 다양한 맛이 다양한 사케 종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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