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都の逸品30

한국어

1 2 3

신발

교토(京都)에는 창업 100년이 넘는 일본 전통 신발 전문점들이 있습니다. 이 신발 전문점의 신발은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지고 착용감도 좋습니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여름철에 즐겨 신어 온 멋진 신발인 게다(일본 나막신)에 대한 꼼꼼한 장인의 솜씨를 소개하겠습니다.

게다(일본 나막신)를 일상적인 신발로 신고 다녔을 무렵, 일본 속담에 "좋은 신발 없이는 제아무리 훌륭한 옷을 입어 봤자 소용없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신고 다니는 신발을 크게 중요시하였고 멋진 신발을 즐겨 신었습니다. 게다(일본 나막신)에 대해서 말할 때 마음속에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게다와 함께 유카타(약식 기모노)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원래 게다(일본 나막신)는 일본에서 구두가 보편화될 때까지 일본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신발이었습니다. 일본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게다(일본 나막신)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만든, 사이즈가 딱 맞는 맞춤 신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일본 나막신)는 두 부분, 즉 발을 얹는 밑창(나무로 된 부분)과 발을 거는 하나오(나막신의 끈 부분(천으로 만듦))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백 가지 종류 중에서 선택한 두 부분을 서로 조합시키면 마음에 드는 자신만의 게다(일본 나막신)가 완성됩니다. 고품질의 게다(일본 나막신) 밑창은 일본의 오동나무로 만듭니다. 이러한 게다는 모두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듭니다. 일본에서 몇 대에 걸쳐서 전해 내려왔고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칠기나 가마쿠라 문양 등의 전통 기술이 게다(일본 나막신) 밑창에 사용되고 있으며 게다(일본 나막신)을 만들 때에는 밑창 하나도 쉽게 결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오(나막신의 끈 부분)도 모두 수작업으로 만듭니다.

하나오(게다의 끈 부분)는 보통 "코"를 뜻하는 한자로 적지만 "꽃"을 뜻하는 한자로 적을 때도 있습니다. 이는 장인이 꽃과 같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신발의 디자인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인은 항상 하나오(게다의 끈 부분)를 제작할 때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일에 주안점을 둡니다. 게다(일본 나막신) 한 벌을 완성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밑창과 하나오(게다의 끈 부분)를 손으로 결합시키는 장인의 솜씨입니다.

모든 사람의 발은 왼쪽과 오른쪽의 크기가 약간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1cm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년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장인 정신으로, 장인들은 구두 제작 시에는 적용할 수 없는, 발 사이즈에 맞추는 미세 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최대한 편안한 신발을 제작하기 위한 노력을 나타냅니다.

게다(일본 나막신)를 신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샌들은 밑창 위에 발 전체를 얹어 놓고 신지만, 게다(일본 나막신)는 발뒤꿈치를 밑창 밖으로 2-3cm 나오게 신는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인다고 여깁니다. 게다(일본 나막신)를 신는 방법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면 교토다운 특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교토에 와서 맞춤 게다(일본 나막신)를 신어 보는 것은 교토의 전통적인 장인 정신과 아름다운 신발에 대한 감각 뿐 아니라 일본인의 감수성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기회입니다.

일본 우산과 종이등

일본 우산은 대나무 뼈대에 일본 종이나 견포를 펴 붙인 우산입니다.

이러한 우산은 중국에서 처음 들어왔고 헤이안(平安)과 가마쿠라(鎌倉) 시대에는 귀족들이 사용하였습니다. 에도(江戶) 시대부터 메이지(明治) 시대에 서양식 우산이 도입될 때까지 일본 우산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종이등은 일본 우산과 같이 대나무 뼈대를 원뿔 모형으로 짜고 뼈대 위에 일본 종이를 붙이고 뼈대 안에 양초를 설치한 조명 도구입니다. 일본에서 종이등은 에도(江戶) 시대에 일반 대중들 사이에 양초가 보급되었던 것과 같은 시기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교토식 일본 우산은 일본 우산 중에서도 역사가 대단히 오래 된 것으로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교토(京都)는 일본 전역의 지역 특산품이 점차적으로 모여들었다는 점에서 옛 도읍지로서의 지역색을 띠고 있습니다. 교토식 일본 우산 역시 이러한 지역 특산품 중의 하나였고 교토(京都) 시민 특유의 생활 필수품으로서 자리잡아 왔습니다. 우산 생산의 전성기 때에는 천 오백 만개 이상의 우산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메이지(明治) 시대에 접어들고 서양식 우산이 사용되기 시작하자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였습니다. 오늘날 일본 우산은 과거와 같이 날마다 사용되는 일은 드물어 졌습니다.

일본 우산의 생산지로 유명한 기후(岐阜)를 비롯해 교토(京都), 가나자와(金澤), 오이타(大分) 및 돗토리(鳥取)와 같은 생산지에 소수의 일본 우산 제조상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일본 우산이 다도, 일본 무용 및 카부키에서 없어서는 안될 한 부분을 차지하고 축제 때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료칸(일본식 여관)과 일본식 요정에서는 일본 우산을 인테리어로도 사용하여 맛깔스런 정취를 자아냅니다.

종이등은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현재의 접이식 종이등의 원조가 만들었으며 손으로 들기 위해 활 모양 손잡이가 달린 종이등과 매어 다는 종이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축제에 사용되는 종이등에는 사찰이나 사원의 이름 또는 가문의 명칭이 적혀 있습니다. 교토(京都)에서는 종이등이 전통 행사와 사찰과 사원의 축제에서 빠지지 않고 사용되며 가게의 간판으로도 종종 사용되고 일상 풍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교토 야채

"교토 야채"는 주로 교토부(京都府)에서 생산되는 야채의 총칭입니다. 그러나 "교토 야채"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없습니다. 단지 교토부(京都府)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야채를 "교토 야채"라고 간주합니다.

1987년에 교토부(京都府)는 오래전부터 경작해 온 다양한 종류의 전통 야채를 보급하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토의 전통 야채"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 정의에 맞는 야채를 선정했습니다. 또한, 전통 야채 중에서 "교토 특산 전통 채소"를 선정하고 판매 촉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교토의 전통 야채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졌고 "교토의 전통 야채"를 일반적으로 "교토 야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야채 경작은 예로부터 교토(京都)에서 왕성하였습니다. "교토 야채" 발전의 한 요인은 교토(京都)의 기후 풍토가 야채 경작에 매우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교토(京都) 분지는 겨울의 강추위와 여름의 혹서에 의한 급격한 계절적 기온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 있으며, 강한 계절풍 때문에 연중 내내 폭풍우가 발생하지 않는 온화한 기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서쪽의 가쓰라 강과 동쪽의 가모가와(鴨川) 사이의 토양에는 상류로부터 표착한, 양분이 풍부한 흙더미가 퇴적하고 양질의 물이 강과 풍부한 지하수에서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으로 양질의 야채 경작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이 제공되었습니다.

교토(京都)가 794년에 일본의 수도가 된 이후, 아시아 대륙과 일본 전국 지역에서 교토로 다양한 문화와 물자가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그 중에 다양한 종류의 야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야채는 천황이나 조정에 제공되는 궁중 요리에 사용되었고 사찰과 사원에서 먹는 쇼진 요리(채식가 요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각종 요리의 발달과 함께 질 높은 야채를 생산하기 위하여 야채의 다양한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야채 소비가 일반 서민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교토(京都)에서는 야채와 신앙과 사회 풍습 간에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즈이키 축제", "큐리 후지"(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의식 도구로 오이 사용) 및 "다이콘 다끼"(일본 무 끓이기)와 같은 풍습이 교토 전 지역에서 아직도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교토(京都)의 전통 야채의 품종을 개량해 왔지만, 야채 재배와 수확에 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이러한 과정이 대량 생산과 현대 야채 판매보다 훨씬 시간 소모가 많기 때문에 전통 야채가 특정 종류가 멸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멸종된 종류를 포함하여 34종의 전통 야채가 1987년에 "교토의 전통 야채"로 선정되어 보전과 육성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전통 야채" 35종, "전통에 준하는 야채" 3종, "멸종한 품종" 2종으로 모두 40종의 야채가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교토의 전통 야채" 중 14종이 "교토 특산 전통 채소"로 인증을 받아 일정량만 생산되고, 전통 야채를 보급하려는 교토부의 노력의 일환으로 교토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데에 쓰이고 있습니다.

"교토 전통 야채"의 정의는 1) 메이지(明治) 시대 이전에 도입된 야채. 2) 교토시 뿐만 아니라 교토 전체 부를 포함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야채. 3) 죽순 포함. 4) 버섯류 제외. 5) 현재 재배되고 보전되는 야채 및 멸종된 품종 포함.

※ "전통에 준하는 야채"란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 이후 품종 개량된 야채를 말함.

【참조: 다카시마 시로(高嶋 四郎) - "세시기교토의 전통 야채와 계절 야채" 톰보 출판사 발행】

교토 인형

일반적으로 교토 인형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토산품으로 장인이 재빨리 만들어 내는 인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인형 제작 과정은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전문 기술이 담겨 있는 이 교토 인형은 각각 별도의 장소에서 인형 머리 장인, 인형 머리 장식 장인, 수족사, 옷 매무새사가 개별적으로 제작하는 전통 공예품으로서 매우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 각각의 분업 과정에서는 고도의 기술 전문성과 꼼꼼한 세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토는 일본 인형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나간 아마가추와 호코(악마를 피하기 위한 아이들의 인형) 시대 이후, 인형 놀이는 황궁의 헤이안 귀족 어린이들이 즐겨하던 일반적인 놀이가 되었습니다. 인형이 더 이상 사람의 상징으로서나 액막이 대상으로 사용되지 않고 단순한 장난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때를 교토 인형의 기원으로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 에도(江戶)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3월 3일(음력)이 인형 놀이를 하는 날이 되었고 앉아 있는 모습의 여자 아이들의 히나 인형이 발달하였습니다. 남자 아이들의 계절 축제에 대해서 말하면 5월 5일(음력)을 겨냥하여 사무라이 전사 인형과 장식 사무라이 투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도 시대는 다양한 종류의 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고급 니시진 직물을 입수하기 쉬워졌고 이런 좋은 조건에 힘입어 계절 축제 인형은 물론, 가모(加茂) 인형, 사가 인형, 고쇼 인형 등과 같이 예술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고품질의 인형이 동시대의 기술적 전문성의 향상과 함께 교토(京都)에서 발달하였고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교토 인형 장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작품에 쏟는 정신적인 전문성 덕에 일본 뿐 아니라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가모(加茂) 인형: 수양버들의 나뭇결에 직물을 삽입한 작은 나무 인형입니다. 민간 신화에 따르면 가모 인형의 시초는 겐분(元文) 시대에 가모(加茂) 신사(神社) 직원이 제사 도구를 만들고 남은 목재를 사용하여 만든 인형이었습니다.

고쇼 인형: 초크 화이트 피부색을 가진 갓난 아기로 묘사되는, 머리 크기를 세 배나 크게 만들도록 정한 인형입니다. 대부분의 고쇼 인형은 나무로 조각하여 화이트 초크로 마감 처리를 하였습니다. 에도(江戶)시대에 탄생한 이 매력적인 인형은 오늘날에도 인기가 많습니다.

이쇼(의상) 인형: 여자 아이들의 히나 인형과 사무라이 투구와 갑옷을 입은 남자 아이들의 단오의 계절 축제 인형인 사무라이 전사 인형은 교토 인형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인형으로서 오늘날에도 명장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치마쓰 인형: 에도(江戶) 시대의 유명한 가부키 연기자인 사노가와(佐野川) 이찌마쓰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남자 아이 인형과 여자 아이 인형이 있으며 출산, 명절 및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교토식 젓가락

젓가락은 세계에서 제일 단순하고 가장 기능적인 식사 도구입니다.

두 개의 간단한 막대기로 자르고, 섞고, 음식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예를 들어, 생선), 싸고, 들고, 집고, 가리키고 떠내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손가락의 연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재는 식물, 동물(상아), 광물(은과 스테인리스 스틸) 및 합성 수지(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됩니다. 대나무, 삼목, 일본산 히노끼(檜) 나무, 소나무, 뽕나무, 밤나무, 벚나무, 흑단 및 자단으로 나뭇결을 살려 만든 젓가락이 있고 칠예를 생산하는 방법으로 생산한 옻칠 젓가락도 있습니다. 다양한 용도를 가진 젓가락은 식사 용도 이외에도 토리바시(取箸), 요리용 젓가락, 다도용 젓가락 및 신토 제의용이 있습니다. 교토식 젓가락은 교토가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였다는 사실 때문에도 교토 요리나 다도의 발전과 함께 교토의 풍요로운 식(食)문화에 있어서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일본인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행위를 통해서 독특한 미적 감각과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바르게 젓가락을 잡는 방법은 손바닥 안에 젓가락을 놓고 2개가 2-3cm의 간격으로 평행이 되도록 잡는 것입니다. 젓가락 소재나 용도는 다양하여 각 형태에 맞게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옻칠한 젓가락과 같은 목재 젓가락이 주류이며 그 다음으로 대나무 젓가락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토(京都)에는 400 여종이나 많은 젓가락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젓가락 종류가 많은 이유는 교토(京都)에 모이는 일류 요리사나 다도의 이에모토(스승)들의 요구와 엄격한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교토식 젓가락이 계속해서 교토(京都)의 식(食)문화를 지원하기 위한 젓가락으로서 발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붉은 리큐 젓가락: 가이세키 요리(다도 요리)에 사용하는 젓가락으로 삼나무의 곧은 결의 아름다움, 어렴풋한 향기, 손에 익숙해진 형태와 부드러운 촉감이 있어 최고의 오모테나시(환대)를 표현하게 해주는 젓가락입니다.

서양목 젓가락: 무거울 뿐만 아니라 젓가락에 사용하는 재료치고는 굉장히 단단한 나무로 만든 젓가락으로 나뭇결에 천연 광택이 나는 표면으로 만든 아름답고 견고한 젓가락입니다.

옻칠 젓가락: 이 젓가락은 각 생산지의 독특한 옻칠 기법과 장식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와카사 칠기 젓가락: 이 젓가락은 나전(자개)이나 금은박(箔)을 사용한 호화스러운 문양이 특징입니다.

와지마 칠기 젓가락: 옻칠로 마감 처리한 젓가락으로 친킹(沈金)이나 금은칠기와 같은 무늬와 장식(加飾)법이 특징인 우아한 스타일의 젓가락입니다.

쓰가루 금칠기 젓가락: 옻을 조심스럽게 층층이 칠하여 광택을 내고 두껍게 층이 지도록 마감 처리한 견고한 젓가락입니다.

붓과 일본 잡화

붓은 약 1,600년전에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본에서 붓의 생산은 약 1,200년 전부터 시작되면서 일본 문화로 수용되었습니다. 가나 문자의 발달과 함께 붓은 일본의 독특한 필기 도구로 진화해 왔습니다. 붓과 함께 문자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승하기 위한 도구로 먹, 벼루 및 종이와 같은 다른 도구가 필요하였습니다. 이들 "문방사우"는 각 도구에 전문성을 가진 별도의 장인들이 계속 제조하였습니다.

붓(모필)으로 글자를 쓸 때에는 벼루와 먹이 필요합니다. 벼루 안에 물을 조금 넣고 검은 잉크를 만들고자 검은 먹을 갈아 준 다음 검어진 액체를 사용하여 종이에 글자를 씁니다. 일상 생활에서 특히 공손한 마음으로 편지를 쓸 때와 결혼식이나 전람회의 리셉션 데스크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할 때 가끔 붓을 사용합니다.

오늘날에는 붓에 잉크가 들어 있는 잉크 내장형 붓이 있어 먹이나 벼루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간단히 편지를 쓰기 위해 이 잉크 내장형 붓을 사용합니다. 오늘날 일반적인 문구점에서는 고가의 붓(모필)을 파는 곳은 드물고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잉크 내장형 붓과 만년필과 같은 현대식 쓰기 도구가 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때때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붓이나 먹을 구매해 갑니다. 붓을 처음으로 사용하는 분에게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만든 종류와 같이 편리하게 이동 케이스가 포함된 서예 세트를 권합니다. 서예 세트에는 붓, 먹, 받침, 문진, 물을 넣는 용기 및 종이가 들어 있습니다. 이 서예 세트만 있으면 붓으로 종이에 글자를 쓸 수 있습니다.

교토식 두부와 교토식 말린 두부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바는 교토의 보석 중 하나로 여겨지는, 교토(京都)의 지역 특산품 중 하나입니다.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옛날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일본에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교토(京都)의 기후와 수려한 자연 경관은 유바를 만들기에 이상적입니다. 또한, 교토는 일본에서 불교의 도읍지로 사원이 많기 때문에 유바가 쇼진 요리(채식가 요리)와 가이세키 요리(다도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므로 유바 만들기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고급 품질의 대두(콩)와 전통 기술로 제조되는 유바는 맛이 담백하고 영양이 풍부하여 교토식 풍미로서 오랜 세월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유바를 만들려면 하룻밤 동안 물에 불리고 반죽형으로 으깨 놓은 대두(콩)를 오가마(大釜)에 넣고 끓인 다음, 눈이 촘촘한 자루로 걸러서 오카라(비지)와 유바국(두유)으로 분리합니다. 이 유바국을 편평한 큰 냄비에 옮겨 가열하면 국의 표면이 엷은 막을 형성합니다. 이 엷은 막이 유바입니다. 이 방법은 우유를 데우면 표면에 막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여기서 불조절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현재는 중탕이라는 방법을 써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유바는 크게 신선한 유바와 건조 유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선한 유바는 냄비에서 막 건져 올린 생생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각 가정에 냉장 기기가 있어 신선한 유바를 집에서 해 먹을 수도 있게 되었지만, 냉장고에 보존하더라도 유바의 유통기한은 약 3일 정도 뿐입니다. 신선한 유바는 생선회 먹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고추냉이 간장 소스, 간장 생강 소스, 폰즈 소스를 찍어 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건조 유바는 유통기한이 더 깁니다. 건조 유바는 실온에서 약 2개월 정도 보관할 수 있습니다. 건조 유바를 먹으려면 소쿠리에 담긴 건조 유바에 물을 붓고 나서 물기를 뺀 후 2-3분 간 그대로 둔 다음, 냄비에 담아 소금, 간장, 설탕, 미린(요리용 술) 등을 첨가하여 조미 후 재빨리 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조리하면 신선한 유바처럼 부드러운 상태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건조 유바는 스프, 미소 장국, 묽은 스튜, 스끼야끼(전골)나 나베모노(전골, 찌개류)에 넣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유바는 영양가가 매우 높은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유바 성분에는 채소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여 소화가 잘됩니다. 요즘에는 일본 요리와 중국 요리는 물론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유바 자체의 맛이 담백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각국의 요리에 독창적인 방법으로 응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니시진 직물

직물 기술은 5세기에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전해졌고 니시진에서는 교토 수도 천도와 함께 궁중 문화의 요추였던 능직과 문직 등의 고급 직물 생산 장려에 따라 견직물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직물은 매우 독창적인 디자인과 고급 직조 기술을 사용하여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에 따라 선염의 문직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직물의 장식은 현란하고 아름다우며, 그 중 12가지 종류의 직물이 전통 공예 산업 진흥법에 의해 공예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여러 다양한 종류의 직물이 생산되고 직물로 짜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니시진 직물은 디자인을 짜기 위해 염색실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니시진 직물을 완성하기까지 수행하는 공정은 약 20가지이고 각 공정은 별도의 장인들에 의해 분업으로 이루어집니다. 794년의 헤이안 천도 후, 직물 회사가 설립되기 시작하였고 직물업은 관영 사업으로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닌의 난 동안에 많은 장인들이 그 지역을 떠났고 직물업은 쇠퇴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인들은 다시 교토로 모여들었고 면직물업이 부흥하였습니다.

이 직물을 니시진 직물이라고 부르지만 교토에 니시진이라는 행정구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니시진 직물 생산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많이 사는 니시진 지구의 명칭은 오닌의 난 동안에 서쪽 동맹군이 이 일대에 진을 쳤다는 사실에서 유래합니다. 염색 기술이 중국에서 유래된 후, 선염 실을 사용하여 다양한 색상과 형태 및 디자인을 짜는 직물 제조가 가능해졌고 화려한 견직물로서의 니시진 직물의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직물은 다양하며 모두 현란하고 아름답습니다.

니시진 직물과 그 생산지 니시진이 조정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보호를 받는 가운데 장인들은 우수한 직물을 생산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장인의 솜씨를 개발하고 아시아 대륙의 생산 기술을 받아들이는 등,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매년 판매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니시진 직물 산업은 일본의 대표적인 견직물업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니시진은 여전히 일본 최대의 고급 직물 생산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조 : 니시진 웹 니시진 직물 산업협회 http://www.nishijin.or.jp/index.html]

몰은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끈 가운데 특별한 미적 품질과 함께 확실한 공예적 아름다움이 깃든 "끈"입니다.

몰을 땋는 방법에는 수십 가지 종류가 있으며, 몰을 땋는 방법은 몰의 사용 용도에 따라 다릅니다. 예전에 몰은 사게오(검에 다는 끈)에 사용되었고 여름철에 주택에서 모기장을 매다는 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우아한 전통 공예품으로서 앤틱하게 주로 휴대용 의약품 용기의 끈과 네쓰케(띠의 장식)의 끈으로 사용하거나 차 용기와 함께 차를 보관하는 다관이나 다기 주머니 끈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교토는 몰의 생산지였으며 교토의 몰은 일본 전통 공예품 중 하나로 지정되었습니다. 교토의 몰은 한 올 한 올의 여러 실을 함께 꼬아 만드는 우아한 전통 공예품입니다. 생산 공정은 매우 길고 노동 시스템의 분업화로 세부 작업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원사에서 실을 염색하고 실 뽑기 등과 같은 세부 작업들을 거쳐서 능직가공과 마감 처리 과정이 수행됩니다. 몰의 역사는 길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나 용도도 변하였습니다.

헤이안 시대의 디자인은 황궁의 위엄과 우아함을 강조하였고 몰은 히라오(기모노의 장식띠), 소데구구리(소매를 조이는 끈), 가부토 노 오(머리에 쓰는 장식용 끈) 등과 같이 의복과 장신구에 사용되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몰은 주로 무기로 쓰였습니다. 무로마치(室町)·아즈치(安土) 모모야마(桃山) 시대에는 다도의 발달과 함께 몰은 주로 족자를 매달기 위한 다쿠보쿠(매다는 끈) 등과 같은 물건에 사용되었으며 디자인도 비교적 밋밋해졌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몰이 하오리(기모노 위에 입는 상의) 끈, 쿠미오비(기모노 허리띠)와 가방의 끈, 머리 장식의 끈으로 쓰이기 시작하였고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몰은 주로 오비(기모노 허리띠) 끈으로 사용되는 일본의 의복 장신구가 되었습니다.

기본 타입의 몰을 땋는 방법으로는 약 40가지 종류의 몰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디자인까지 포함시키면 몰 땋는 방법의 수는 약 3천 여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몰은 수십 개의 실 다발을 몇 개의 뭉치로 싸고 그 뭉치를 비스듬히 교차시키면서 땋아 나갑니다. 실을 비스듬히 교차함으로써 몰에 신축성이 생깁니다. 일본 의류의 오비(기모노 허리띠) 끈으로 종종 몰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몰이 신축성이 있어 기모노를 입은 사람이 호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오비(기모노 허리띠)의 끈이 조정될 수 있어 끈이 너무 조이거나 느슨해지지 않습니다.

다기

다도는 물을 끓이고 차를 만들어 대접하는 것과 관련된 예절과 행동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도는 주객 간의 일체감 뿐 아니라 손님 접대의 미를 강조합니다. 다기나 다실 도꼬노마에 거는 족자와 같은 다도 용품은 모두 일급 예술품이며 다도가 행해지는 동안 다도의 전체적인 예술성에 기여합니다. 우지(宇治)라는 차 재배지가 있고 찻집도 많이 있었던 까닭에 교토(京都)의 다기 문화는 예로부터 발달해 왔습니다. 각가지 종류의 다기와 함께 교토(京都) 전통 공예의 기술적 전문성을 자랑하는 많은 도구가 있습니다.

계절이 다도에서는 소중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시즌이 있습니다. 5월에서 10월까지는 차를 만들기 위해 푸로(이동식 난로)가 사용되는 계절이고 11월에서 4월까지는 로(화로)가 사용되는 계절입니다. 다도례에서 첫 번째로 배우는 것은 다도례의 기본 자세입니다. 다도례는 쇠주전자에 넣고 끓인 물과 함께 다음의 도구를 사용하여 이루어집니다.

차완(찻잔): 차완(찻잔)에는 앞면으로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림이 있는 면이 바로 앞면입니다. 차를 만들 때와 손님에게 접대할 때 차완(찻잔)의 앞면은 항상 손님을 향합니다. 차를 받을 때는 왼손으로 받아 시계 방향으로 돌려서 마십니다. 차를 마신 후 차완(찻잔)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아 앞면이 손님을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차완(찻잔)을 돌려줄 때 앞면이 주인을 향하도록 돌려 놓습니다.

켄수(물 버리는 그릇): 차완(찻잔)을 씻기 위해 사용한 물을 버리기 위한 그릇입니다.

차센(차 거품기): 차센(차 거품기)은 차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고 실로 꿰어 만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쓰이는 용도도 제각각입니다. 다도 스타일에 따라 차센(차 거품기)의 형태와 대나무 종류가 다릅니다.

차샤쿠(찻수저): 나쓰메(다관)나 기타 차 용기에서 차를 떠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저처럼 생긴 도구입니다. 주로 대나무로 만듭니다.

차킨(차 냅킨): 차완(찻잔)을 닦을 때 사용하는 삼베 행주입니다.

나쓰메(다관): 차 용기의 일종입니다. 나무와 대나무 나쓰메(다관) 뿐 아니라 도자기로 만든 나쓰메도 있고 일본 종이에 옻을 칠해 만든 나쓰메도 있습니다.

1 2 3